[요구사항]독립적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자

2023년 1월 25일 행정안전부는 설명자료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조사마저 손 놓으며 사실상 재난 총괄 기능을 포기’ 한 것 아니냐는 언론의 지적에 반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참사의 원인조사가 “경찰의 특수본 수사와 국회의 국정조사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실시”되었으며, “추가적인 원인조사보다는 이미 실시된 원인조사 결과를 감안하여 유사 재난 및 사고 방지를 위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사의 원인 규명이 이미 끝났다는 입장을 밝힌 셈입니다.


지금까지 알게 된 사실만으로 재발방지대책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을까요? 경찰 특수본은 검찰에 송치된 이들이 법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은 지적했지만, ‘왜 어겼는지’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112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가 다른 신고가 너무 많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인파 밀집 위험을 가볍게 취급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국정조사에서도 경찰의 조직 문화나 112신고를 배정하는 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제대로 진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진단 없이 인파 밀집 상황의 여러 위험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습니다.


수사와 별개로 ‘재난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합니다. 안전은 썩은 사과만 골라내는 것, 즉 잘못한 개인을 조직에서 내보내는 것만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잘못한 개인을 지목하는 것을 넘어, 조직 문화를 진단하고, 시스템 작동 관행을 들여다보고, 과거의 어떤 선택과 학습이 현재의 문제로 이어졌는지 살펴야 합니다.


둘째, 공동의 재난 서사를 사회에 남겨야 합니다. 국정조사는 경찰 특수본 수사보다 한 발 더 나가긴 했지만, 국정조사 보고서에는 서사가 없습니다. 국정조사를 통해 뭔가가 밝혀진 것 같기는 한데, 그 뭔가를 잘 모르겠다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사람은 단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를 기억 합니다. 재난조사는 조사 종료 후 보고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참사의 위험을 키워왔는지, 참사의 가장 핵심 시간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참사 이후 대응 과정에서 어떤 시스템이 멈췄거나 잘못 작동했는지 종합적인 하나의 서사를 제시해야 합니다. 공적으로 승인된 서사는 공통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래야 재발방지대책도 힘을 얻고, 제대로 된 애도도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셋째,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합니다. 희생자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최대한 복원하고 알리는 것 자체가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생존자들 또한 자신이 겪은 일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공적으로 인정받아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재난참사가 발생했을 때, 수사를 곧 조사인 양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참사와 산재사망에 관한 여러 독립적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조사위원회마다 한계도 있었지만 성과도 작지 않았습니다. 매 참사에서 특별조사기구를 만드는 수고를 겪지 않기 위해 상설적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자는 논의도 무르익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진전을 없던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와 생존자의 권리, 피해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 독립적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