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Q&A
많은 시민들이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애도합니다. 애도의 마음 한편에는 참사를 막지 못한 죄책 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 감입니다. 그런데 가장 책임감을 많이 느껴야 할 정부 책임 자들은 오히려 책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참사 이후 윤석 열 대통령은 종교행사와 회의석상에서 ‘죄송한 마음’이라 더니 이제는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하라’는 유가족 과 시민들의 요구를 불온시하며 탄압하고 있습니다.사회는 점차 복잡해집니다. 기후위기로 재난의 발생 위험도 높아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여 예방과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적절하게 대응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재난의 구조적인 원인을 밝혀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라고 국가가 있는 것입니다.10.29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는 어땠나요? 정부는 예측할 수 있는 인파 밀집 위험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예방도 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위험이 참사로 발현되는 동안 징후를 무시했고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정권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정부는 국가위기관리체계의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냈습니다.우리는 정부에 책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법률 위반이 드러난 일부 공직자에게 책임을 떠넘길 뿐입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법적책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참사와 관련한 행위자들의 법 위반 사실만을 문제삼습니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인 책임자들은 빠져나가고 결정권한이 없는 이들만 책임을 지게 됩니다. 생명과 안전은 시민들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이 권리를 지킬 책무가 있습니다. 국가의 책무는 구체적인 제도와 시스템의 운영으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책무를 다하지 못하여 159명의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당연히 정부는 ‘정치적’으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어떤 사람은 이태원에 간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운이 없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생명과 안전의 보호가 개개인 각자의 책임이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정부의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과 더불어 정치적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제라도 정부가 제 역할을 하게 해서 사회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책임의 인정은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사과에는 책임의 인정과 더불어 재발방지대책과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방안이 담겨야 합니다.우리는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가진 시민이기에 정부에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합니다.
159명의 시민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 상민 행안부 장관도 윤희근 경찰청장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 키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2023년 2월 8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습니다. 참사 가 발생하고 102일 만의 일이었습니다.102일 동안의 그의 행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는 취임 후 “국민이 재난과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 록 선진화된 재난 안전 관리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약속했 습니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하자 그는 무책임하고 무능했습 니다. 위기관리 매뉴얼 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중앙재 난안전대책본부를 빠르게 구성하지도 않았습니다.참사 직후 정부합동브리핑에서는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퇴 요구가 빗발치자 그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동문서답으로 일축했습니다. 설 전날인 1월 21일 유가족협의회에 사전연락도 없이 ‘도둑조문’을 했다가 유가족들에게 큰 반발을 샀습니다. 진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무책임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감싸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일선 경찰을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2022년 11월 출국 때는 배웅나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왼쪽 팔을 두 차례 두드려 친근감을 표시했고 귀국에서는 “고생많았다”고 격려했습니다.대통령실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20분 만에 언론공지를 내어 “의회주의 포기다.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반헌법적 폭거이자 의회주의 파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주권자인 시민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우선합니다.우리의 권리를 천명하는 헌법의 이름으로 이상민 행정안전 부장관은 파면되어야 합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의 파면은 참사의 재발을 막을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2023년 1월 25일 행정안전부는 설명자료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조사마저 손 놓으며 사실상 재난 총괄 기능을 포기’ 한 것 아니냐는 언론의 지적에 반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참사의 원인조사가 “경찰의 특수본 수사와 국회의 국정조사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실시”되었으며, “추가적인 원인조사보다는 이미 실시된 원인조사 결과를 감안하여 유사 재난 및 사고 방지를 위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사의 원인 규명이 이미 끝났다는 입장을 밝힌 셈입니다.지금까지 알게 된 사실만으로 재발방지대책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을까요? 경찰 특수본은 검찰에 송치된 이들이 법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은 지적했지만, ‘왜 어겼는지’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112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가 다른 신고가 너무 많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인파 밀집 위험을 가볍게 취급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국정조사에서도 경찰의 조직 문화나 112신고를 배정하는 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제대로 진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진단 없이 인파 밀집 상황의 여러 위험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습니다.수사와 별개로 ‘재난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합니다. 안전은 썩은 사과만 골라내는 것, 즉 잘못한 개인을 조직에서 내보내는 것만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잘못한 개인을 지목하는 것을 넘어, 조직 문화를 진단하고, 시스템 작동 관행을 들여다보고, 과거의 어떤 선택과 학습이 현재의 문제로 이어졌는지 살펴야 합니다.둘째, 공동의 재난 서사를 사회에 남겨야 합니다. 국정조사는 경찰 특수본 수사보다 한 발 더 나가긴 했지만, 국정조사 보고서에는 서사가 없습니다. 국정조사를 통해 뭔가가 밝혀진 것 같기는 한데, 그 뭔가를 잘 모르겠다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사람은 단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를 기억 합니다. 재난조사는 조사 종료 후 보고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참사의 위험을 키워왔는지, 참사의 가장 핵심 시간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참사 이후 대응 과정에서 어떤 시스템이 멈췄거나 잘못 작동했는지 종합적인 하나의 서사를 제시해야 합니다. 공적으로 승인된 서사는 공통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래야 재발방지대책도 힘을 얻고, 제대로 된 애도도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셋째,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합니다. 희생자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최대한 복원하고 알리는 것 자체가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생존자들 또한 자신이 겪은 일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공적으로 인정받아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한국에서는 재난참사가 발생했을 때, 수사를 곧 조사인 양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참사와 산재사망에 관한 여러 독립적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조사위원회마다 한계도 있었지만 성과도 작지 않았습니다. 매 참사에서 특별조사기구를 만드는 수고를 겪지 않기 위해 상설적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자는 논의도 무르익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진전을 없던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와 생존자의 권리, 피해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 독립적 재난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는 다양합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159명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 참사 현장에서 신체적·심리적 부상을 입은 생존자와 구조자. 참사의 기억을 갖고 참사 이후의 이태원에서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지역주민, 상인, 노동자. 그리고 이를 목격해야 했든 모든 사람들까지, 10.29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입니다.다양한 피해자에게 공통적인 것은 이들 모두가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단지 운 나쁘게 현장에 있었던, 사고에 휘말린 사람이 아닙니다. 재난참사와 그 이후의 과정에서 존엄을 훼손당한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로서 다시 존엄함을 찾는 것은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피해자 권리의 보장은 재난참사를 더 잘 이해하고 모두가 존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열쇠입니다.국제적으로는 2005년 유엔이 피해자 권리장전을 통해 정의에 대한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 피해회복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여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피해자의 권리는 단지 지원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재난참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 받고 진상을 알 권리,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온전한 기억·추모·애도의 권리, 추모사업·공동체 회복 등 재난참사 이후의 과정에 참여할 권리, 정당한 배상과 보상을 받을 권리, 이들 권리 모두가 피해자가 존엄을 되찾기 위해 필요합니다.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의 법과 제도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난과 피해자 지원에 관해 기본법 역할을 하는 <재난안전법>과 <재해구 호법>은 재난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 역시 물질적 구호에 한정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그래서 세월호참사 이후 피해자를 보다 구체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은 기존의 재난 관련 법들에 비해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의 원칙을 규정하고 피해지역에 대한 지원과 공동체 회복까지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권리가 구체화되지 않고, 진상규명과 이후의 대책에 대해서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따로 나뉘어 제정된 한계가 있었습니다.피해자 지원과 진상규명 모두가 피해자가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렇기에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0.29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진실, 정의, 회복이라는 피해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로서 존엄을 되찾고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선 진상조사 과정에서 미처 다 밝히지 못한 과제를 포함해 특조위가 반드시 조사하고 밝혀야 할 과제들에 대해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길 바랍니다.